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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문 고전의 번역물, 그 중에서도 특히 교감(校勘), 표점(標點) 작업의 결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것이 저작권 침해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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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다268061 저작권침해 등 (가) 파기환송(일부)

 

[한문 고전의 번역물, 그 중에서도 특히 교감(校勘), 표점(標點) 작업의 결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것이 저작권 침해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1.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호되기 위한 요건(창작성) 및 원고 저작물의 교감·표점 부분이 저작권법상 저작물인지 여부(소극), 2. 저작권 침해의 요건 및 피고들의 행위가 저작권 침해를 구성하는지 여부(소극), 3. 민법상 불법행위의 성립과 관련하여, 특히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러한 행위의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1.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하여 창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창작성이 인정되려면 적어도 어떠한 작품이 단순히 남의 것을 모방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사상이나 감정에 대한 창작자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을 담고 있어야 한다(대법원 2018. 5. 15. 선고 2016다227625 판결,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9도9601 판결 참조).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는 표현, 즉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창작물이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1. 2. 10. 선고 2009도291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에 기재된 원고 저작물(이하 ‘원고 저작물’이라 한다)은 위선지의 원문에 교감(校勘), 표점(標點) 작업을 한 부분과 이를 번역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감(校勘)’은 문헌에 관한 여러 판본을 서로 비교․대조하여 문자나 어구의 진위를 고증하고 정확한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표점(標點)’은 구두점이 없거나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한문 원문의 올바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적절한 표점부호를 표기하는 작업이다. 원고 저작물에서 교감 작업을 통해 원문을 확정하는 것과 표점 작업을 통해 의미에 맞도록 적절한 표점부호를 선택하는 것은 모두 학술적 사상 그 자체에 해당한다. 그러한 학술적 사상을 문자나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낸 원고 저작물의 교감․표점 부분에 관해서는 원고와 동일한 학술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논리구성상 그와 달리 표현하기 어렵거나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으므로, 이 부분은 결국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 저작물 중 교감한 문자와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난 표현에 원고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다고 보기 어렵다.

2.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침해자의 저작물이 저작권자의 저작물에 의거(依據)하여 그것을 이용하였어야 하고, 침해자의 저작물과 저작권자의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5다35707 판결, 위 대법원 2019도9601 판결 참조).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으로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 형식이므로,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해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10813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복제된 창작성 있는 표현 부분이 원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양적․질적 비중 등도 고려하여 복제권 등의 침해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0다70520, 70537 판결 참조).

3.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위법행위는 불법행위의 핵심적인 성립 요건으로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 법질서의 관점에서 사회통념상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포함할 수 있는 탄력적인 개념이다.

불법행위의 성립 요건으로서 위법성은 관련 행위 전체를 일체로 보아 판단하여 결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ㆍ상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2. 9. 선고 99다55434 판결 등 참조). 소유권을 비롯한 절대권을 침해한 경우뿐만 아니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침해행위의 양태, 피침해이익의 성질과 그 정도에 비추어 그 위법성이 인정되면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이 소유권 등 물권을 침해하지 않은 경우에도 민법 제750조의 위법행위 개념을 활용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타인의 성과물을 도용하였다는 이유로 위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도 이에 속한다. 즉, 대법원은 경쟁자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을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여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경쟁자의 노력과 투자에 편승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 경쟁자의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0. 8. 25.자 2008마1541 결정 참조).

또한 대법원은 계약 교섭의 부당파기에 관한 사례에서 일정한 요건 하에 불법행위의 성립을 긍정해 왔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대법원 2004. 5. 28. 선고 2002다32301 판결 등 참조).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가지게 된 경우에, 그러한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 상대방이 오히려 상당한 이유 없이 이를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 체결의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에 있었던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러한 행위의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다.

 

☞ 원고는 피고 대한민국 산하 ○○대학교 ○○연구원(이하 ‘○○연구원’)과 협력하여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한 임원경제지의 번역 사업을 수행하기로 하고, 교감·표점 작업을 거쳐 번역 작업을 수행해 왔으나, 정식 번역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위 협력 사업이 종결되었고, 이후 피고들에 의하여 임원경제지 중 위선지, 만학지 부분이 번역, 출간되었음. 이에 원고는, 원고가 교감·표점 및 번역 작업을 하여 작성한 번역본 초고(이하 ‘원고 번역본 초고’)를 피고들이 무단으로 이용하여 위선지, 만학지를 출간하였고, 이러한 피고들의 행위는 ①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거나, ②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주장하였음. 그러나 제1심과 원심은 원고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였고, 원심판결에 대하여 원고가 상고하였음

 

☞ 대법원은, 먼저 원고 번역본 초고 중 교감·표점 부분이 저작권법상 저작물인지에 관하여, 원고 번역본 초고에서 교감 작업을 통해 원문을 확정하는 것과 표점 작업을 통해 의미에 맞도록 적절한 표점부호를 선택하는 것은 모두 학술적 사상 그 자체에 해당하고, 그러한 학술적 사상을 문자나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낸 원고 번역본 초고의 교감․표점 부분에 관해서는 원고와 동일한 학술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논리구성상 그와 달리 표현하기 어렵거나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으므로, 이 부분은 결국 누가 하더라도 같거나 비슷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며,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 번역본 초고 중 교감한 문자와 표점부호 등으로 나타난 표현에 원고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 번역본 초고 중 교감·표점 부분을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음

 

☞ 다음으로 대법원은 저작권 침해 여부에 관하여, 판시와 같은 이유로 원고 번역본 초고와 피고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아 피고들이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였음

 

☞ 반면 대법원은 민법상 불법행위 성립 여부에 관해서는, ① 원고 번역본 초고가 작성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상당한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 그리고 높은 수준의 정신적 노력이 투입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② 원고 번역본 초고에는 원고가 나름대로 노력을 들여 독자적으로 연구, 검토한 결과 교감·표점 및 번역 작업을 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러한 부분의 존재 여부나 비중 등을 살펴보지 않은 채 원고 번역본 초고가 상당한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구축한 성과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③ ○○연구원과 원고는 이 사건 협력 사업을 통하여 임원경제지의 번역·출간 작업을 함께 수행하였고, 그 결과 ○○연구원과 원고 사이에는 일정한 정도의 협력관계나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원고 번역본 초고는 바로 그러한 협력관계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번역 계약의 체결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 원고의 노력과 투자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고, 나아가 원고는 이 사건 협력 사업 종료 이후 원고 번역본 초고의 폐기와 사용금지를 명시적으로 요청하기도 하였는바, 만일 피고들이 위와 같은 사정을 인식하고서도 원고 번역본 초고를 무단으로 이용하여 피고 저작물을 작성·출판한 것이라면, 피고들의 행위는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여지가 더욱 큰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으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들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여 이를 기초로 피고들의 행위가 계약 체결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협력관계나 신뢰관계에 있었던 원고가 가지게 된 보호가치 있는 기대나 신뢰를 침해하고 부정한 경쟁행위로서 민법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판단하였어야 한다는 이유로, 이와 다른 취지의 원심을 파기함

 

☞ 한문으로 된 고전의 번역물, 그 중에서도 특히 교감·표점 작업의 결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행위의 법적 책임이 문제된 사안에서,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호되기 위한 창작성의 의미, 저작권 침해 인정 여부, 민법상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 등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한 사례로서, 특히 일반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 위법성이 가지는 체계적 의의와 더불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카)목이 도입되기 전의 일명 ‘성과물 도용 법리’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의 성립과 관련하여, 계약 체결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대나 신뢰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의무를 위반하면서 상대방의 성과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해칠 뿐만 아니라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를 위반한 것으로서 그러한 행위의 위법성을 좀 더 쉽게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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